천민(賤民)은 조선 신분제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흔히 노비를 떠올리지만, 천민은 노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직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사회가 천하게 여긴 여러 부류가 여기에 포함됐습니다. 이들은 대개 그 신분과 직업을 대물림했고, 거주지·복식·혼인 등에서 엄격한 차별을 받았습니다.

백정 — 가장 심한 차별을 받은 이들

백정(白丁)은 소·돼지를 도축하거나 가죽을 다루고 버들세공을 하던 사람들로, 천민 중에서도 특히 심한 차별을 받았습니다. 마을 안에 함께 살지 못하고 따로 모여 살아야 했으며, 이름·의복·장례에까지 제약이 따랐습니다. 갑오개혁으로 법적 신분은 해방되었지만 사회적 차별은 오래 이어졌고, 이에 맞서 1923년 경남 진주에서 형평사(衡平社)가 조직되어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형평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광대·재인 — 천대받은 예능인

줄타기·탈춤·판소리 등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 광대와 재인(才人)은 오늘날의 시선으로는 예술가였지만, 당시에는 떠돌며 재주를 파는 천한 무리로 여겨졌습니다. 이들이 갈고닦은 기예는 뒷날 한국 전통 연희와 판소리의 큰 줄기가 되었습니다.

무당과 기생

굿과 점을 통해 사람들의 길흉을 다룬 무당(무격)도 천민으로 분류됐습니다. 관청에 소속되어 잔치와 접대에서 노래·춤·악기를 담당한 관기(官妓), 곧 기생 역시 천인 신분이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시와 음악에 뛰어나 이름을 남기기도 했지만, 신분의 굴레는 벗기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