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는 조선시대 최하층 신분으로, 남자 종을 '노(奴)', 여자 종을 '비(婢)'라 하여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 국가기관에 소속된 공노비와 개인·양반가에 소속된 사노비로 나뉘었으며,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될 만큼 재산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주인과 함께 살며 집안일을 하는 솔거노비, 따로 살면서 신공(身貢)을 바치는 외거노비 등 형태도 다양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았던 인구
노비는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꾸준히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학계 추산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최대 30~40%, 한양과 같은 도성 지역에서는 그 비율이 70%에 달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즉 조선시대 사람들 중 상당수가 노비 신분이었던 셈입니다.
노비제도의 폐지
노비제도는 1801년 공노비 해방을 시작으로 점차 축소되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신분제의 가장 아래층을 지탱해온 이들의 존재는, 조선 사회를 실질적으로 떠받친 노동력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게 평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