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平民)은 양인(良人) 중에서도 양반이나 중인이 아닌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상민(常民)·양민(良民)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조선 인구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계층으로,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 농민이었고 그 외에 장사를 하는 상인, 수공업에 종사하는 공장(工匠)도 여기에 포함됐습니다.
조선을 떠받친 세금과 국역
평민은 국가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부담을 짊어진 계층이었습니다. 토지에 매기는 조세(田稅), 특산물을 바치는 공납(貢納), 그리고 몸으로 지는 역(役) — 군대에 복무하는 군역과 성·도로 공사 등에 동원되는 요역 — 을 모두 부담했습니다. 양반이 군역에서 면제된 것과 달리 평민 남성에게 군역은 무거운 의무였고, 후기에는 군포(軍布)라는 옷감으로 대신 내는 경우가 많아 그 부담이 가계를 짓눌렀습니다.
법적 권리와 현실의 간극
평민은 법적으로는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 자유민이었습니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는 재산을 모은 평민이 무과나 잡과를 통해 신분 상승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교육받을 시간과 비용의 여유가 없어 관직에 오르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신체의 자유는 보장받되 무거운 국역을 지는, 노비와 양반 사이의 중간적 위치에 있었던 셈입니다.
조선 후기, 줄어드는 평민
조선 후기에는 무거운 군역을 피하고 신분 상승을 노린 평민들이 공명첩·납속으로 양반 신분을 사들이거나 족보를 위조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그 결과 양반을 자처하는 호는 급증하고 평민과 노비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추세가 나타났습니다. 신분을 사고파는 일이 흔해질수록 신분제의 경계 자체가 점점 희미해졌고, 이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법적으로 폐지되는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