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신분은 더 이상 태어날 때 완전히 고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가 재정을 메우려 신분과 관직을 사실상 팔면서, 돈과 곡식이 신분을 바꾸는 통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공명첩과 납속책이었습니다.

공명첩 — 이름 칸이 빈 임명장

공명첩(空名帖)은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는 칸을 비워 둔 채로 발행한 관직·품계 임명장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고가 바닥나자, 조정은 이 문서를 발급해 두었다가 돈이나 곡식을 내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넘겨주었습니다. 대개 실제 직무가 따르는 실직이 아니라 명예직이나 품계에 그쳤지만, 그것만으로도 군역 면제 같은 실질적 혜택과 ‘양반 비슷한’ 대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납속 — 곡식을 바치고 얻은 특전

납속책(納粟策)은 흉년이나 전란으로 부족해진 재정과 구휼 곡식을 확보하기 위해, 곡식이나 돈을 바친 사람에게 그 대가로 벼슬·품계·면역, 때로는 노비의 면천(免賤) 같은 특전을 준 제도입니다. 재산을 모은 평민이나 부유한 상인에게 이는 신분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현실적인 사다리였습니다.

신분제를 안에서 무너뜨리다

이런 제도들은 당장의 재정에는 도움이 됐지만, 신분제의 근간을 안에서부터 흔들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신분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양반을 자처하는 인구가 급격히 늘고 평민·노비의 비중은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몰락한 양반가의 족보를 사들이거나 위조하는 관행까지 더해지며, ‘진짜 양반’과 ‘돈으로 된 양반’의 경계는 점점 흐려졌습니다. 오늘날 많은 집안이 양반의 족보를 갖게 된 배경에는 이런 조선 후기의 신분 이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