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奴婢)는 조선시대 최하층 신분으로, 남자 종을 ‘노(奴)’, 여자 종을 ‘비(婢)’라 하여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 양인과 천인으로 나뉘는 양천제(良賤制)에서 대표적인 천민이었으며,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될 만큼 사실상 재산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공노비와 사노비, 솔거와 외거

노비는 소속에 따라 국가기관에 딸린 공노비(公奴婢)와 개인·양반가에 딸린 사노비(私奴婢)로 나뉘었습니다. 또 사는 형태에 따라 주인집에 함께 살며 집안일과 농사를 돕는 솔거노비, 따로 살림을 꾸리고 대신 신공(身貢)이라는 일종의 세를 바치는 외거노비로 구분됐습니다. 외거노비는 자기 재산을 모으고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생활을 하기도 해, 흔히 떠올리는 ‘종’의 이미지와는 처지가 사뭇 달랐습니다.

신분은 어떻게 대물림되었나

노비 신분은 세습되었기에 그 수를 정하는 규칙이 곧 노비 인구를 좌우했습니다. 부모 중 한쪽만 노비여도 자식을 노비로 삼는 일천즉천(一賤則賤) 원칙이 오래 작동했고,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게 한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이 시기에 따라 시행과 폐지를 거듭했습니다. 이런 세습 규정 탓에 노비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신분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았던 인구

노비는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꾸준히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학계 추산에 따르면 시기와 지역에 따라 전체 인구의 최대 30~40%에 이르렀고, 일부 지역 호적 연구에서는 한때 그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즉 조선시대 사람들 중 상당수가 노비 신분이었던 셈이며, 오늘날 한국인의 조상 상당수도 여기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노비제도의 폐지

노비제도는 한 번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축소됐습니다. 1801년 순조 때 중앙 관청의 공노비 약 6만여 명이 해방되었고, 1886년에는 노비의 세습이 금지되었으며, 마침내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와 함께 노비제가 법적으로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신분제의 가장 아래층을 지탱해온 이들은, 조선 사회를 실질적으로 떠받친 노동력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게 평가받습니다.